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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전 인류의 소소한 행복 vs 나 혼자만의 최대 행복

by 수완킴 2025.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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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주의의 핵심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입니다. 그럼 여기서 중요한 건 최대 다수일까요, 아니면 최대 행복일까요?
그걸 알아보기 위해 극단적인 가정을 한번 준비해 보았습니다.
자, 여러분의 눈앞에 양복을 입은 정체불명의 한 사람이 나타나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합니다.

왼쪽에는 평화롭고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이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있고, 오른쪽에는 한 사람만 환하게 웃고 있지만 그 뒤로는 전쟁과 황폐함이 가득하다. 중앙에는 선글라스를 쓴 중성적인 인물이 양손을 벌리고 두 선택지를 가리키며 서있다.

 

1번, 전 인류의 소소한 행복을 담보합니다. 하지만 그 행복은 ‘극단적’이진 않습니다.  삼시세끼 잘 먹고, 소소한 여가를 즐기며, 전쟁 없이 평화롭게 사는 삶입니다. 이 선택지의 행복의 총합을 100이라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2번은 나에게만 극단의 행복이 제공됩니다. 이제 여러분은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으며, 인생이 술술 잘 풀립니다. 내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총합은 1번 선택지(전 인류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의 3배인 300입니다. 하지만 당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고통받고, 지구 곳곳에서 늘 분쟁이 발생합니다.

 

이럴 때 공리주의에서는 둘 중 어떤 선택지가 최선이라고 생각할까요?
그리고 다른 철학 사조에서는 어떤 선택을 할까요?
정치적, 경제적인 관점에서는요?
하나씩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공리주의적 관점

공리주의는 단순히 '행복'의 양을 계산하는 게 아니라, 행복의 총합에서 고통의 총합을 뺀 '순수한 행복'의 총량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1] 양적 공리주의

공리주의자의 창시자인 제러미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는 '쾌락 계산법'을 통해서 행복과 고통을 수치화했어요. 그 관점에서 보면,
1번 선택지에서 전 인류 행복의 총합은 100이고, 이 선택지에서 고통도 거의 없기에 순수한 행복의 총량도 100에 가깝다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2번 선택지에서 한 사람의 행복은 300이지만, 나머지 전 인류가 고통을 겪게 될 것이기 때문에 순수한 행복은 100보다 훨씬 낮아지거나 마이너스가 될 겁니다. 한 사람의 거대한 행복이 대부분의 인류가 겪는 고통의 총량을 상쇄하긴 어려울 테니까요.

[2] 질적 공리주의

질적 공리주의자 존 스튜어트 밀 역시 같은 결론에 도달할 겁니다. 그는 쾌락의 양뿐만 아니라 질을 중시했어요.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가 보장되는 고차원적인 행복을 더 가치 있게 여겼죠. 그의 관점에서 2번 선택지는 다수의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에 질적으로 열등하며, 1번 선택지는 다수의 기본적 자유와 존엄이 보장되었기에 질적으로 우월한 선택이 되겠죠.
결론적으로, 겉보기에는 최대 행복이 2번 선택지(300)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공리주의적 관점에서는 1번 선택지가 압도적으로 윤리적이며 합리적인 선택이 됩니다.

 

2. 철학적 관점

공리주의 외의 주류 철학사조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부분의 철학은 2번 선택지를 윤리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틀린 선택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왜냐하면 이 선택은 현대 철학의 핵심인 인권과 보편적 가치를 정면으로 위배하기 때문이죠.

[1] 인권과 도덕의 근본 원칙

대다수의 철학은 행위의 결과보다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를 우선시해요. 2번 선택지는 한 사람의 행복을 위해 다수의 고통을 정당화하는 구조이기에, 이런 원칙과 충돌하죠.
이마누엘 칸트는 인간을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쾌락을 위해 나머지 인류를 고통의 도구로 삼는 2번은 부도덕한 행위로 간주될 거예요.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행위자의 성품에 집중합니다. 타인의 고통 위에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행위는 도덕적 미덕과는 거리가 먼 선택이죠. 따라서 2번을 택하는 사람은 도덕적으로 결핍된 인격으로 간주될 겁니다.

[2] 행복의 본질적인 모순

표면적으로 2번 선택지는 '나의 행복 극대화'를 약속하는 듯 보이지만, 철학적으로 깊이 들여다보면, 이 선택은 진정한 행복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모순된 구조를 지니고 있어요.
인간의 행복은 물질적 풍요나 고통의 부재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에요. 사랑, 우정, 공동체 속 소속감에서 비롯되죠. 만약 내 가족, 친구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고통받는다면, 나의 행복은 결국 고립되고 말 겁니다. 타인의 불행을 알면서도 혼자만 누리는 행복은 죄책감이나 고독으로 이어져 진정한 만족감을 주지 못할 거예요.
또한 고통받는 다수는 저항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통받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분노하고 반란을 일으킬 거고, 결국 나의 행복은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불안정한 상태가 되겠죠.

주인공은 멋진 양복을 입은 깔끔한 모습이지만, TV에 보도되는 전쟁을 보고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

3. 정치·경제적 관점

'윤리적으로 보면 당연히 2번은 나쁜 선택지겠지, 하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해도 그럴까?'
여기까지 읽은 당신이라면 이런 궁금증을 가질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정치적, 경제적 관점에서 이 사고 실험을 분석해 볼게요.

[1] 정치적 관점

1번 선택지는 민주주의와 복지국가의 이상에 가깝습니다. 정치의 가장 큰 목표 중 하나가 '사회 안정'인 만큼, 다수의 지지를 바탕으로 모든 국민에게 기본적인 삶의 질을 보장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1번은 가장 안정적이고 바람직한 결과를 낳을 수 있겠죠.
반면, 2번 선택지는 소수가 모든 자원과 권력을 독점하고 다수의 희생을 강요하는 전체주의나 독재 체제의 극단적인 형태와 닮아 있습니다. 이런 체제는 고통받는 다수의 저항을 불러오고, 결국 정치적 정당성을 잃고 붕괴될 가능성이 높아요.

[2] 경제적 관점

경제적으로 보면 1번 선택지는 분배를 중시하는 복지국가 경제 모델과 유사한 분배 중심 구조입니다. 부의 총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지는 않더라도, 대다수에게 안정적인 삶을 보장하며, 사회적 비용(빈곤, 범죄 등)을 줄이는 효과가 있죠. 결과적으로는 지속가능한 경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2번 선택지는 어떨까요? 극단적 승자독식 경제 모델과 비슷합니다. 다수의 고통을 바탕으로 소수에게 막대한 부가 쌓이는 형태는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아 불평등이 심화되며, 장기적으로는 시스템 자체를 무너뜨릴 위험이 존재하지요.
이렇게 따져보면, 철학적 관점뿐만 아니라 정치적·경제적 관점 모두에서 1번 선택지가 훨씬 더 바람직하고 안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현실적인 관점에서도 한 사람의 극단적인 행복을 위해 나머지 모두가 고통받는 사회는 결코 지속될 수 없다는 거죠.

 

솔직히 말해서, 만약 제가 이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면 바로 1번을 택하진 못할 겁니다. 전 성인군자가 아니라 때때로 이기적 선택을 하기도 하는 평범한 인간이거든요. 내가 느낄 수 있는 최극한의 행복이라니? 너무 흥미롭고 매력적이라 2번을 두고 꽤 길게 고민할 것 같아요.
하지만 이내 그 기쁨이 오래가지 않을 거라는 결론에 도달할 겁니다. 내 주변 지인들, 가족, 친구 그리고 뉴스 속 고통받는 사람들을 마주할 대마다 마음이 무거워질 게 분명하니까요. 결국 저는 1번을 택하겠지만, 이 선택은 고결한 이타심에서 비롯된 게 아니에요.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내 기분이 더 나빠질 것 같다는, 내 행복을 지키기 위한 합리적 이기심의 발현이 이타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 것이죠.
아마 여러분 중에서도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신 분들이 있지 않을까요? 우리의 선택은 어쩌면 이기심과 이타심의 미묘한 경계에 서 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 이 포스팅을 통해서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행복이 타인의 불행과 분리될 수 없는 이유는 뭔지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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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작용 없는 행복버튼이 공짜로 주어진다면, 당신의 선택은?

상상해 봅시다. 어느 날, 현관문 앞에 택배 상자 하나가 도착합니다. 그 택배 상자 안에는 행복버튼이라는 이름이 적힌 작은 기계가 들어있죠. 동봉된 설명서에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이 버튼

dailyswan.tistory.com

*본 글에 포함된 이미지는 AI 도구를 통해 생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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