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우주 탐사선 보이저 1호가 태양계를 벗어나기 직전 촬영한, 지구가 마치 작은 티끌처럼 보이는 사진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다시 저 점을 보라. 저것이 우리의 고향이다. 저것이 우리다.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아는 모든 이들, 예전에 삶을 영위했던 모든 인류들이 바로 저기에서 살았다."
— 칼 세이건, 『창백한 푸른 점』
많은 이들이 이 구절을 읽으며, 인간이 우주 속에서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를 깨닫고, 그 사실에서 역설적인 위로를 얻었다고 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에게는 그 사진도, 그 글도 큰 감흥이 없었다. 우주라는 공간의 거대함은 나에게 별로 와닿지 않아서 그랬을 거다.
그러다 최근, 지구의 기나긴 역사 속에서 인류가 등장한 과정을 살펴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인류는 지구의 주인공처럼 굴지만, 45억 년의 시간 중 1초 정도 등장한 엑스트라일 뿐이라는 것.
그리고 고작 한 개인인 나의 인생은 0.0000001초도 안된다는 것.
그 거대한 시간의 흐름 속 내 위치를 자각하니까 이상하게도 후련한 마음이 들었다. 칼 세이건의 글에서 묘한 안정감을 느낀 사람들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슬프거나 허무하진 않았다.
내가 지나치게 걱정하고 조바심 내던 일들은 얼마나 사소한가.
나의 시간은 찰나의 찰나의 찰나라는 걸 알고 나니 해방감이 들었다.

2
나는 종종 미완성이었던 과거의 나를 미워하고, 미성숙했던 시절을 부끄러워했다.
그런 감정은 앞으로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되곤 했다.
솔직히 나만 이런 거 아닐 거다.
대부분의 인간은 자신이 주인공인 좁은 프레임 안에서 사니까.
그래서 실수 하나에도 숨이 막히고, 실패 하나에도 세상이 끝난 듯이 군다.
내 인생의 사건들이 너무 다 크게 느껴지는 거지.
하지만 시야를 넓혀보면, 그 모든 건 찰나의 파동 정도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파동'을 판단하는 기준들조차 결국은 찰나의 산물이다.
중세에는 중세만의 옳음이 있었고, 현대에는 현대의 옳음이 있다.
같은 시대 안에서도, 완벽해 보였던 기준이 몇 년 지나지 않아 낡은 기준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내가 과거의 나를 지금 세상의 잣대로 함부로 평가할 필요가 있을까?
또한 세상은 늘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 내고, 그 기준에 맞춰서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으로 가른다.
엄청나게 떠받들면서 칭송하기도 하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살아보면 알잖아. 최선이라 믿었던 선택이 시간이 지나니 최악이 되기도 하고, 당시엔 절망이라 여겼던 일이 나중에 의외의 길을 열어주기도 한다는 것을.
기준조차 찰나이고, 그 기준에 따라 내린 선택 또한 찰나라면... 뭐 그렇게 심각하게 살 필요가 있을까? 조금은 가볍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
(오해할까 봐 덧붙이는데 가볍게 산다는 건 대충 산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결과에 짓눌리지 말고, 하루하루를 조금 더 즐겁게 살아보자는 거다.)
3
지난날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많이 웃었던 날도 있었지만 한없이 절망했던 시절도 있었고, 머리가 울릴 정도로 분노했던 순간도 있었다.
그 모든 걸 다 겪고 나니 이렇게나 성장했답니다^^
...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도 난 불안하고 미래는 여전히 막막하다. 좋은 일이 찾아올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또다시 견디기 힘든 일이 닥칠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제는 그것 또한 찰나의 찰나의 찰나일 거란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굳이 두려워할 필요가 있을까?
아프면 아픈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그저 순간을 온전히 느끼며 살아가 보련다.
*게시물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공지능 모델의 도움을 받아 구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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