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밤, 당신은 길가에서 버려진 듯한 흙투성이의 작은 보라색 인형 하나를 발견합니다. 측은한 마음이 들어 인형을 집으로 데려와 뽀송뽀송하게 씻겨 말려두고 잠이 듭니다. 그랬더니 꿈속에서 그 인형이 나타나 너무 고맙다며 당신에게 선택권을 제시합니다.
"난 세상의 가장 심각한 문제 50%를 없앨 수 있어. 대신에 이 마법을 위해서는 인류의 5%도 무작위로 희생되어야 해. 네가 원한다면 곧바로 주문을 외워줄게."
자, 당신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기회가 단 한 번 주어진다면, 그 대가로 인류의 5%를 지불하시겠습니까? 오늘은 이 보라색 인형의 섬뜩한 거래 앞에서 개인의 권리와 전체 이익이라는 두 가지 주요 윤리적 원칙을 저울질해보려 합니다.

1. 찬성 입장
공리주의자는 이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아 보여요. 그들의 도덕적 판단 기준은 행위의 결과가 가져올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의 극대화에 있기 때문입니다. 5%의 희생으로 95%의 인간을 포함한 사회 전체의 총행복이 증가한다면, 공리주의는 이 결과를 선(善)이라고 판단할 겁니다.
특히 도덕적으로 고려할 대상을 즐거움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모든 존재(인간뿐 아니라 동물, 넓게는 미래 세대까지)로 확장시킨 현대 공리주의자 피터싱어는 소수 희생자들의 개별 권리 침해는 전체 효용 증진이라는 더 큰 도덕적 명령 앞에서는 부차적인 문제로 볼 거예요.
2. 반대 입장
[1] 의무론(칸트주의)
의무론자들은 행위의 도덕적 옳고 그름을 결과가 아닌 보편적 도덕 원리에서 찾습니다. 이 의무론적 관점의 핵심을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임마누엘 칸트의 정언명령이며, 그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공식은 다음과 같아요.
1) 네 의지의 행동 원칙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도록 행위하라.
2) 너 자신과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을 단순히 수단으로만 대우하지 말고,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대우하도록 행위하라.
누군가를 무작위로 희생하여 전 인류가 편해질 수 있다는 논리는 1) 보편 법칙의 시험을 결코 통과하지 못할 겁니다. 또한 모든 인간은 그 자체로 절대적인 목적이라 누구도 타인의 이익을 위해 희생되어선 안되기에, 2) 인격 존중의 관점에서도 이 제안은 허용될 수 없을 겁니다. 따라서 의무론자는 인형의 제안에 절대적으로 반대할 겁니다.
[2] 정의론
존 롤스의 정의론도 인형의 제안에 강력하게 반대할 것 같아요. 롤스는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절차적 공정성과 개인의 권리를 절대적으로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모르는 가상의 상황인 '무지의 베일' 뒤에서 규칙을 정한다면, 그 누구도 자신이 희생자가 될 위험을 감수하는 규칙에 동의하지 않을 거라고 주장할거예요. 이는 모든 사람에게 생명권과 같은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가 평등하게 주어져야 한다는 평등한 자유의 원칙에도 정면으로 위배되고요. 기본적으로 롤스는 아무리 사회 전체의 이익이라는 좋은 명분이 있더라도, 자발적 동의 없는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정의를 침해하는 행위이므로 절대 용납될 수 없다고 봅니다.
철학적으로는 알겠는데, 그럼 현실 정치와 사회에서는 어떨까요?
결론만 먼저 말하면 공익적인 명분 하에 집단 희생은 단기적으로 이득이 있을지 몰라도, 실제 사회의 정치 시스템에서는 절대 받아들여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제안은 민주 사회의 근간을 무너뜨리기 때문이에요. 아무도 자신이 언제든 무작위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극도의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려 하지 않을 것이며, 이는 결국 사회적 신뢰와 협력을 완전히 파괴할 겁니다. 더 나아가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라는 논리는 독재 국가에서 무고한 시민들을 박해하는 전체주의적 논리로 쉽게 변질되어 재앙을 불러왔던 역사적 교훈이 있죠. 따라서 이 제안은 정치적 정당성도 없고, 장기적으로는 사회 전체에 회복 불가능한 공포, 분열, 윤리적 트라우마만을 남기게 되므로 부적절합니다.

그럼 여기에 조건이 하나 더 추가된다면요? 당신이 찝찝해하며 망설이자 보라색 인형이 다시 말을 꺼냅니다.
"네가 망설이는 이유를 알겠어. 무고한 생명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부분 때문이지? 그럼 조건을 바꿔볼게. 내가 사라지게 할 5%는 랜덤한 사람이 아냐. 이제 희생자를 강력 범죄자들 혹은 강력 범죄를 저지르고도 벌을 받지 않은 자들, 남의 인생에 평생 씻을 수 없는 해를 끼쳐온 악인들로만 구성할게. 그럼 네 판단은 더 쉬워질까?"
언뜻 보기에는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변하는 건 없을 겁니다. 의무론과 정의론은 여전히 어떠한 형태의 희생도 도덕적으로 용납 불가하다는 원리주의적 입장을 일관적으로 유지할 테니까요. 더불어 인형이 '악인'의 범위를 어떻게 규정할지, 오판할 가능성은 없을지 등의 의문도 들고요.
여러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셨을까요?
인형의 제안, 처음엔 섬뜩했지만 조건이 바뀌고 나니 조금은 덜 무섭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이 글을 읽고 나서 여러분의 생각은 그대로인지 바뀌셨는지도 궁금합니다. 혹시 또 다른 윤리적 딜레마를 경험하고 싶으시다면, 예전 포스팅을 읽어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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